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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 고구려비 전시관
2022-04-03

충주 고구려비 전시관 

 

공식 명칭은 ‘충주고구려비(忠州高句麗碑)’이지만, 일반적으로 신라 시대 충주의 옛 지명에서 비롯된 ‘중원고구려비’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국내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고구려의 석비(石碑)로 1979년 단국대학교박물관 조사단이 발견해 1981년 3월 18일 국보로 지정되었으며, 원본은 충주시 중앙탑면 용전리에 위치한 충주고구려비 전시관에 보존되어 있습니다.

 

높이 203cm, 폭 55cm, 두께 33cm이며, 커다란 자연석을 다듬어 그대로 비면(碑面)으로 삼고 있으며 4면에 모두 예서체로 글을 새겼지만 뒷면과 우측면은 글씨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마모되었고, 앞면과 좌측면 일부의 내용만 확인이 되며  글자 하나의 지름은 3∼5cm로 앞면에 23자씩 10줄, 좌측면에 23자씩 7줄이 있으며, 우측면에는 6줄, 뒷면에 9줄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비가 세워진 시기에 대해서는 4세기부터 6세기까지 여러 가지 학설이 있으나, 일반적으로 고구려가 남한강 유역까지 영역을 확장한 5세기 장수왕 때 세워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비문에서는 고구려 왕을 ‘고려대왕(高麗大王)’이라고 칭하고 있으며, ‘신라토내당주(新羅土內幢主)’ 등의 표현에서 고구려군이 신라의 영토에 주둔하며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사실이 확인되며, 이외에 고모루성(古牟婁城), 대사자(大使者) 등 당시의 지명과 관직명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중원 고구려비는 5세기 고구려의 남진(南進)과 신라와의 관계를 알려주어 사료(史料)로서의 가치가 매우 크고, 특히 고구려의 금석문(金石文)은 광개토대왕비(廣開土大王碑) 등 매우 일부만 전해지고 있는데, 이 석비는 한반도의 중부 지역인 남한강 유역에서 발견되었다는 점에서 그 중요성이 더 높게 평가 됩니다.

 

*충주나루에서 25분거리